top of page
All My Stories
Anchor 1



선교역사 서문
1946년 평양에서 부터 아버님을 따르며 모시고 나온 제자들. 협회원서 1번 수제자 김원필 선생과 계시를 받고 아버님을 찾아온 지승도 할머니(1895년생)와 옥세현 할머니(1897년생)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나라- 천일국이 완성될 때 까지 하나님의 선교 섭리는 계속된다. 하나님은 때에 맞추어 준비된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파송하신다. 파송 받은 자는 절대 믿음으로 응답하고 순종하여 보내시는 곳, 임지로 간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밝히며, 희망의 등불이 되어 뭇 생명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한다. 재림주 참부모님은 새 시대의 진리- <원리>를 통해 타락으로 무지에 빠진 우리를 구하여 참생명의 인간으로 회복시키신다. 부활의 역사다. 성령충만의 실체들이다. 참부모님은 1950녀대 이들 준비된 인물을 파송하심으로 섭리의 새시대를 열어나가셨다. 천일국 시대의 출발이다. 통일교는 선교는 반대와 핍박 속에서 출발했지만


<< 誠愛士 양윤영 선생 >>
誠愛士 양윤영 선생 재림의 때다. 한반도에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국의 1920년대, 30, 40, 50년대는 성령의 시대요, 동시에 계시의 시대였다. 새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령한 사람들, 예언하는 사람, 영통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고, ‘이제 곧 주님이 오시니, 회개하라’ 외치는 부흥회도 많았다. 임박한 섭리의 때를 알리는 사건이 1954년-55년에 발생한다. ‘이단 통일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제적하고 교수들을 제명하는 사건이 터지고, 연일 언론의 일면을 장식했다. 아버님이 7월4일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되면서 수난의 역사가 벌어졌다. 그 와중에 하늘이 준비한 섭리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요한, 최원복, 유효원, 정석천, , ,,, 양윤영, 김영운, 박봉애, 박보희, 김영휘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주님을 만나 섭리의 주역으로 나서게 된다. 그 중에서도 양윤영 선생의 사적이 눈에 띄는 이유는 50년대 통일교 수난 시대의 단초를


김원필 선생의 일생
‘협회입회원서 1번’인 김원필 선생은 ‘아버님의 수제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예수 앞에 베드로와 같은 인물이다. 통일교 식구 모두가 감사하는 선배 식구다. 평양에서 사범학교 졸업반 학생으로 19세에 참 스승이신 아버님을 만나 일생을 모시고 따랐다. 흥남 감옥으로 충모님을 모시고 면회를 갔고, 다리불구 제자 박정화를 자전건에 태우고 아버님께서 천리남행-대장정을 할 때(1950년12월4일-1951년1월17일), 평양에서 부산까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수없는 생사의 고비를 아버님과 함께 넘었다. 6.25 전쟁중 부산 피난 시절에는 범냇골 토담집을 아버님과 함께 짓고, 밤낮으로 그림을 그려 생활비를 벌어댔고, 아버님께서 <원리원본>을 집필하실 때, 연필을 깍아대느라 땀을 흘렸다. 아버님이 계시적 내용을 써내려가실 때는 빠른 속도로 엄청난 양의 ‘원리’를 쓰시기 때문에 연필이 금방 금방 달아버리기 경우가 다반사였다. 김원필 선생이 늦게


선교역사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참부모님을 따르는 일이다. 통일교 식구들은 본이 되신 참부모님의 참사랑의 헌신과 사랑의 승리 역사에 감동하고 공감하여 같은 길을 가겠다고 결의하고 나선 사람들이다. ‘뜻’의 길이다. 초창기 개척시대에 ‘뜻’ -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해 식구들은 개인의 뜻을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영계에서 인도하는 대로,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기꺼이 감사하며 갔다. 아버님, 최봉춘 선교사, 유효원 협회장님 1965 김영운 선교사 본보기 로정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참부모님을 따르는 것이다. 참부모님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하에 비밀 결사를 조식하시고 동지들을 모았다. ‘호랑이 보다 무서운’ 일본순사들의 고문에도 뜻의 동지들을 보호해 내셨다. 해방후 1946년 6월 아버님은 두달된 아들과 산모를 위해 쌀을 구하러 밖으로 나갔다가, 하늘의 음성을 듣고 서울을 떠나 곧바로 공산 통치하의 평양으로 들어가셨다.


이요한 목사님의 사적
이요한 목사 (왼쪽) 이상헌 선생 (오른쪽) 1916년 9월4일 평북 선천군 출생 통일교회 1호 목사: 1954년 아버님께서 직접 목사안수를 해주심. 이요한 목사님은 통일교 목회자의 상징이요, 대표자요, 표상이라 할 만한 어르신이시다. 일제의 한국 식민통치가 점점 강화되면서 많은 조선인들이 조국을 떠나 만주(중국의 동북3성)으로 이주하였다. 목사님이 7살 되던해 1923년, 가족이 중국 요녕성 심양으로 이주했다. 1939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까지 16년간 중국에 살며, 생업을 도우며 신앙생활에 열심을 다하였다. 성서 연구, 신학공부, 설교와 전도는 그의 천직이었다. 교회에 목사가 없을 때는 자연스레 대신 설교를 하고 교인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18세 때였다. 어는 순간에는 설교하는 것이 당연한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되고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생계를 돕기위해 세상 일을 할 때도 성경공부와 하나님을 모시는 종적 신앙을 지켰다. 하
Anchor 2
bottom of page